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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기 위해 영겁의 시간을 건넜다. 단 한 사람, 너를 위해서.
그런데 어찌하여 나는 계속 너의 생을 지켜내지 못 하는 것이냐. 계속해서 흐르는 시간의 영역을 되돌려보아도 왜 남은 것은 죽어있는 너인 것이냐. 도대체 왜 너의 숨결에 닿을 수 없는 것이냐. 너는 진정 내게서 영영 떠나가 버린 것이냐.
정녕 너의 죽음이 내가 받아야 할 마지막 벌인 것이냐.
신은 식은땀으로 젖은 채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온통 새까만 색 밤하늘이 너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걸 할 수 있는데, 너 하나 가질 수가 없다. 자꾸만 검은 흔적들로 흩어지던 네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너의 잔상들이 내 심장을 어지럽힌다. 너와 함께했던 과거들에 나는 뜨거운 여름마저 차갑게 보냈다. 여야, 너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 정말 너와 나는 영원히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서 갈라진 것이냐.
제발 여느 때처럼 내게 화를 내고 토라져서 네게 손대지 못하게 하여라. 망자들을 보내고 오면 어두워진 얼굴로 내게 안겼듯이 다시 한 번 내게 다가와 차가운 몸을 맞대어라. 그리하여 네 슬픔을 조금 잊던 그 과거를 다시 반복할 수 있게 해주어라.
부탁이니 너를 살리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을 돌리고 있는 내 앞에 다시 나타나주기를.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바뀐 것 하나 없는 방을 둘러본 신은 다시금 눈을 감았다. 다섯 번째 시도. 눈을 감고 피가 묻은 너의 반지를 손에 쥐었다. 네가 죽던 그 날을 생각하며 익숙하게 짜여 있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났다. 그러면 또 다시 반복되는 똑같은 장면들에 갇혀 죽는 너를 지켜본다.
“검...뽑을게요, 도깨비 아저씨.”
똑같이 반복되는 장면들이 예전의 경험들과는 다르게 잠시 멈추었다. 깊고도 아득한 과거의 생각들에 잠겨 헤엄을 치고 있자니 그리 이질적일 수도 없었다.
너를 사랑함에도 죽음을 택했던 건 나의 이기심이었다. 전세의 주군이 죄를 다 갚고 저승사자의 업을 끝내고 나면 내게 남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일 뿐이었으니. 네가 죽는 걸 보고 살아갈 용기 따윈 없었기에 내가 죽는 걸 네게 보여주려 했던 이기심. 어쩌면 그 이기심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그 곳에서 나를 잃기를 죽도록 원했으나 나의 간절한 바람은 어찌 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지 나는 그 꽃밭에서 너를 잃었다.
검이 뽑히는 건 한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평생을 겪어왔던 통증은 사라지고 고요함만이 찾아왔다. 다들 나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모두들 푸른빛으로 흩어져 세상에서 존재를 지우는 내 모습을 그리며 울고 있었다. 짧게 흘러가는 찰나 내 눈이 감기며 너를 담아내었다. 나를 죽였으나, 내가 절대 죽일 수 없었던 전생의 정인이 으스러지고 있었다. 내게서 벗어난 검은 너를 향했다. 스러지는 너를 마지막으로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미 너는 세상에서 너를 지운지 오래였다. 모두가 애통함과 안타까움이 담긴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너는 그렇게 죽었다. 네가 내게 하사한 검에 핏빛의 심장을 찔린 채, 그래. 그렇게.
칠성이 말했던 ‘무’의 존재로 회귀한다는 삶은 그저 평범한 인간의 삶이었다. 너를 떠나보내고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린 지 5년이 흘렀다. 네가 이승을 떠났던 그 날은 매년 반복되며 내게 자그마한 기회를 주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막힌 기회는 신의 배려인가, 아니면 신의 장난인가.
네가 가지고 있던 옥반지에는 너의 짙은 혈흔이 묻어 있었다. 차마 지울 수 없어 남겨두었던 혈흔이었다. 나는 그렇게라도 너를 기억해야 했기에.
전세의 주군은 참으로 멍청하고 진심이라고는 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지라 그 옥 반지는 결국 내게 전해지지 못했다. 비인 선희의 말로는 그 반지를 무신인 내게 주려고 그리고 아끼었다던데, 처음 전해 들었을 적엔 그리도 웃길 수가 없었다. 건장한 무신에게 옥 반지라니.
잠시 전생을 떠올리자 다시금 움직이는 장면들이었다.
신은 재생되는 시간 속에서 ‘무’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저를 바라보는 여의 차가운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 자신에 대한 증오감이겠지. 저가 꽂아 넣은 검이었으니.
어찌 시기심은 사랑보다 독했던가. 그리도 믿었던 정인이었거늘. 어찌 한낱 투기심으로 저가 그토록 아꼈던 이에게 죽음을 하사하였던가.
정녕 저하는 소인을 사랑하셨나이까.
빼곡히 차오르는 전생의 기억들은 긴 시간을 돌고 돌아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여를 볼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잊히지 않는 기억들 속에는 배반의 핏빛 역사가 새겨져 있었기에. 그리하여 너에게 이기심을 선사했던 것 같다. 내가 너를 사랑하여 겪었던 아픔들을 너도 한 번 겪어보라고. 나는 참으로 잔혹하고 못난 신이었다. 너를 잃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네가 없는 삶 따위 더욱 고통일 뿐이라고.
검이 신의 가슴께에서 뽑히고 있었다. 신은 여의 앞으로 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저 검을 막을 수 있다면, 제발 그 일이 가능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다시금 내가 그 검을 내 죄로 삼고 천 년을 살아가야 한다고 해도 나는 네가 필요했다.
신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여의 앞을 막아섰다. 순식간에 날아드는 검은 다행히도 신에게 꽂혔다. 신의 손에서 힘없이 떨궈진 반지가 여의 발께로 굴러갔다. 여가 기시감을 느끼며 반지를 주워들자 스러진 신의 인영이 여의 눈가로 들어왔다.
현재와 과거의 신은 현재의 모습으로 합쳐져 메밀꽃밭에 죽음으로써 나뒹굴고 있었다.
“다음 생은, 우리... 꽤 괜찮은 사랑을 할 거다, 여야...”
감기는 눈은 어찌 그리도 애석한지 그 예쁜 얼굴을 더 오래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단언하건대 이 사랑은 신의 장난이었다,
여는 피로 물든 메밀꽃 밭에서 오랜 시간동안 죽은 사랑을 애도했다. 그저 피와 눈물 그뿐이었다.
***
“서울지방경찰청 강력 1팀에 배정받은 이 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 신씨.”
벚꽃이 한참을 흩날렸다.
“빨리 오라니까. 범인 안 잡을 겁니까? 일단 저쪽으로 가 봐요. 인사는 나중에 합시다.”
짜증스런 첫 만남의 사이로 달콤한 벚꽃내음이 흘러들었다.
인연은 또 시작되고 운명으로 이어지니, 칠성과 삼신의 술잔 부딪히는 소리만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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