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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손을 뻗으면 하늘을 가질 수 있고, 아래로 손을 뻗으면 만 백성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생전에도 그러했듯이 다시 태어난 이후에도 선한 마음을 잊지 않은 그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얽힌 인연을 바로 하고 태초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힘을 썼다. 덕분에 많은 자들이 덕과 복을 얻어 구원받았으나, 이는 잠시뿐이요 그를 시기한 많은 자들은 되려 자신들을 제대로 인도하지 못한 신을 탓했다. 그럴 때마다 신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면서도 내심 드는 서운함을 채 감출 수가 없었는데, 이 서운함은 장마철 곰팡이처럼 서서히 자라나 끝내는 그의 마음을 종식하고 말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유치해진다고 했던가. 신은 검은 머그컵을 들며 조용히 고개를 수그렸다.
그럼에도 제 몫이려니 하고 사람의 한을 풀어주며 태초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에 힘쓰던 그의 앞에 떡 하니 떨어진 것은, 온통 검은 천을 두른 사내였다. 그는 매사가 냉랭했고, 시대의 흐름에도 무뎠다. 모든 것이 저와는 반대인 사내였다. 신이 불이라면 그는 물이었다. 신이 하늘이라면 그는 땅이었다. 신이 낮이라면 그는 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그를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제 첫 사랑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평생을 쌓아온 외로움과 서운함은 어째선지 바로 나갈 말들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하였다. 고운 말을 해주어도 모자랄 판에, 그리도 못났다, 못났다 제 멋대로 입을 열고 소리를 내었다. 신은 어린 사내아이보다도 못한 제 솔직함에 화가 났으나 근 천 년을 쌓아온 버릇이란 실로 무서운 것이어서 고친다고 노력해도 고치기가 힘든 것이었다. 덕분에 그와의 사이는 하염없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전지전능은 무슨.”
신은 제 손가락을 노니는 메밀꽃잎들을 바라보다 부르튼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천 년간 남의 인생을 구원하면 무얼 하나, 제 인생 하나 제대로 고쳐 쓰지 못하는 것을. 전지전능이란 모두 쓸데없는 미사어구에 불과했다. 차라리 해결법이라도 어디서 뚝 떨어지면 좋겠건만 그 해결법이란 제 자신을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니 애처로운 것도 이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다.
신의 시름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졌고, 하늘은 매일이 장마철인 듯 검은 먹구름을 드리웠다. 당장에라도 빗물을 떨굴 것 같은 가을 하늘에 후임 차사가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와, 엄청나게 쏟아지려나 봅니다.”
“응.”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건조해도 모자랄 가을에, 이렇게 비가 연신 내리다니.”
여는 그 까닭을 짐작하였으나 모르는 체 글쎄, 하고 딴청을 부렸다.
신은 지금, 몇 시간째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요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사각형의 물건은 고독을 노닐고 싶을 때에는 지독히도 울려대더니, 지금은 늦은 새벽의 길거리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아니, 차라리 내가 먼저 나선다면. 손을 뻗던 신이 조금 멈칫거렸다. 안그래도 좋은 사이가 아닌데, 전화를 한다고 해서 반길 이도 아니었다. 아니 그 전에 제 번호가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내내 입술을 곱씹던 신이 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차가운 손길이 어깨에 닿았다. 그야말로 귀신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자, 그는 조금 불쾌한 듯 미간을 구겼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무슨.”
모르는 체 시침을 떼자 그는 모르는 체 하지 말라며 딴지를 건다. 신은 멋쩍음에 뒷목을 벅벅 긁었다.
“왜 그렇게 비를 내리느냔 말이야. 무슨 일 있어?”
“네 알 바 아닌 것 같은데.”
“내 생각엔 내 알 바인 것 같아서.”
그가 웃는다. 신은 괜히 꼬리가 잡힌 기분에 버럭 화를 냈다.
“그런 거 아니거든!”
“내가 직업상 사람을 많이 대하다보니 사람 감정 읽는 게 좀 쉽거든.”
“.....”
그의 검은 옷자락이 팔락이는 것을 알아챈 순간이었다. 말캉한 입술이 잠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간의 고민은 이만하면 된 것 같으니, 이제는 좀 새로운 고민을 해봐.”
“....”
두 눈을 감았다 뜨니, 검은 옷자락은 이미 살랑거리며 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이것 참. 신은 비실비실 올라가는 입 꼬리를 감추기 위해, 마른세수를 하며 또다시 눈을 감았다. 검은 빛이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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