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et ; 속죄
w.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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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었다.
300년 가량 혼자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친구가 생겨 그에대한 애착일 뿐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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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저승사자. 요즘에 눈도 안 마주치고 이러는 이유가 뭐야? 나한테 화났어?”
“어, 났지. 화. 아마 곧 징계가 내려올거야. 네 덕분에 남용한 능력때문에.”
주량이라고는 고작 맥주 한 캔이면서 밖에서 술을 마신게 화근이었다.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사람 앞에서 금나와라 뚝딱, 은나와라 뚝딱 해댔으니 저승에게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고작 기억 방면으로 도움을 준 거 하나가지고 상부에서 징계가 내려온단다. 저승에게서는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 기가 찼다.
“도깨비, 네 생각 다 들리거든.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투덜대지마.”
“그러게 내가 진작에 이 집에서 나가라고 했지. 계약금이랑 위약금 다 돌려준다니까?”
아. 나도 모르게 욱해버렸다.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했던 저승사자는 내가 한 생각과 말 때문에 더 화가 난 듯 자신의 샐러드에 뿌려먹던 드레싱통을 날려 내 옆에 있던 물컵에 넣어버렸다. 평소같으면 이미 공중에 접시를 띄우고 칼과 포크를 서로에게 겨누며 싸웠을 테지만 내가 한 행동이 있기에 가만히 있기로 했다.
“징계가 내려오면 나한테 말 해. 이래 봬도 나 돈 많아. 너 한 명쯤은 평생 놀고 먹게 해줄 수 있어. 왜. 입이라도 꼬매게 될까봐 무섭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 하. 아니다. 내가 말을 말지. 도깨비,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으면 기 입 놀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게 네가 나에게 해주는 최선이야. 아, 이참에 나한테도 수호신 노릇 한 번 해주던가.”
저놈의 저승사자가. 상스러운 것 좀 치우고 갈 것이지. 평소답지 않게 화를 버럭 내며 식사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저승사자는 출근이라는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이 놈의 입이 문제지, 입이. 그래도 저 화는 풀어줘야 할 텐데. 어떻게 풀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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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저승. 징계는 받았어? 무슨 징계 받았는데? 직무정지? 아니면 노잣돈 받지 말래?”
저승이 모처럼 일찍 들어와 나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함께 하던 중 상부의 부름을 받고 자신의 찻집으로 사라진지 정확히 2시간 후였다. 퀭한 몰골로 들어와 나와는 눈도 안 마주치고 들어가는 저승에 조금 섭섭함을 느꼈다.
“왜. 무슨 일인데. 많이 심각한거야?”
저승사자의 방문을 두드리며 물어보아도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나 큰 벌이기에 이렇게 도깨비를 대놓고 무시해. 허, 참. 진짜로 말 못하게 입을 꼬맸나.
“야, 저승사자. 무슨 일이냐고. 진짜로 입이라도 꼬맨거야? 네가 말을 해야 내가 뭘 해주든 말든 하지. 해줄게. 네 수호신.”
“수호신 그런 거 필요없어. 그리고 나 이 집에서 나갈거야. 지금 당장. 계약금은 필요없어. 그냥 너 가져.”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와서 나간다니. 나가랜다고 진짜 나가게? 이제와서?”
“왕 여. 이게 내 이름이래. 이제는 내가 나갈 이유가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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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부 감사팀이다. 앉아라. 그대는 차사직을 수행함에 있어 사사로이 능력을 쓴 사실이 확인되었다.”
“인간의 기억을 지운 것 외에 존재를 들키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 등. 모두 인정하는가?”
“인정합니다.”
“본인도 인정한다. 이에 대해 중징계를 내리니 사안의 엄중함을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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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는 이 징계는 내가 스스로 잊는 선택을 한 기억을 다시 되돌려 받는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중히 여기지 않고 스스로 삶을 끝내는 선택을 하는 자들에게 삶이 끝난 사람들의 마지막 배웅을 할 수 있는 저승사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벌을 받고 있는 와중에 능력을 남용한 나에게 내려지는 벌은 내 전생의 벌과 직시하는 것이었지만 그 벌은 너무나도 썼다. 나는 왕여였고, 김신은 도깨비다. 이보다 더한 새드엔딩은 없었다.
그동안 김신에게서 수도 없이 들었던 이름이, 김신이 그렇게 원명하던 이름이, 김신에게 나라를 지키라 명하며 검을 하사하고 하사한 검으로 김신을 죽인 사람의 이름이, 그 이름의 주인이, 나였다. 나의 사랑을 우정으로 치부했던 순간을 다행이라고 느낀 순간이다. 나는 앞으로 김신의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되겠다. 떠나가야겠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김신에 대한 속죄이며,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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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받고 집으로 들어가니 바로 김신이 보였다.
김신이 나를 걱정한다.
김신의 보챔 끝에 그에게 지옥과 다름없는 이름을 말했다.
왕 여.
그리고 그 순간 나의 세상은 보라색으로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