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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여가 퇴근했다. 제 딴에는 나를 잔뜩 흥분 시킬거랍시고  간식거리 따위를 잔뜩 사 가지고서. 신발장에서 구두를 벗는 그 움직임이 꽤나 부산스러웠다. 내내 갑갑한 구두 속에서 갇혀있던 발이 쉬이 나올 리 없으니 어그적거리다가 한 번은 휘청거리며 넘어질 게 뻔했다. 뒤이어 들려오는 쿵. 봉지 터지는 소리도 나는 걸 보면 필시 엉덩이로 애견 과자를 뭉갰을 터였다. 퇴근한 것과 나를 본다는 것의 기쁨이 어찌나 맥시멈을 찍는지 상상초월이라 웃음이 난다. 거실의 바닥 장판을 앓는 소리를 내며 밟는다. 어쩐지 발소리를 죽인 것 만 같아서 지나친 배려심 때문에 오늘도 어디서 새치기는 안 당했나 슬그머니 걱정이 든다. 그리고 슬개골이 접혀지는 무릎 관절의 소리. 왕여가 나를 관찰하려 몸을 숙이는 섬유 옷감 특유의 재질 소리가 바스락 거린다. 

 

 

 “멍뭉아- 나 왔어.” 

 

 

 테이프로 허접하게 이어붙인 '거처'가 녀석의 두드림으로 흔들렸다. 거처라고 하기엔 뭐 한 게 그냥 라면 박스 앞뒤 트여다가 매직으로 뭐라 뭐라 적어놓은 걸로 마무리 지은 후에 집이라고 넣어주는데 어이가 없어서 손가락을 물었던 것 같다. 조만간 나갈건데 조금만 참으면 될 걸 감정이 앞서는 바람에 아직도 왕여의 왼쪽 검지 손가락 두 번째 마디가 움푹 패어져 이빨자국 나있는 게 미안했다. 송곳니가 좀 세야지. 이빨을 딱딱 소리 나게끔 입맛을 다시니 왕여가 재빠르게 간식을 갖고 온다. 그러나 그뿐, 미동이 없다시피하니까 코끝을 간질이는데 한 번 봐주자는 심정으로 살짝 움직이니 푸스스 웃는다. 여기저기 쓰다듬다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지 찰칵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마 오늘로써 휴대전화 앨범에 사진이 200장을 넘겼을 터였다. 그래도 눈을 안 뜨니까 한숨을 폭 내쉰다. 그럼에도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이 퍽 다정스러웠다. 이건 2주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어서 참 마음에 든다.  

 

 

 “애기라서 그런 가, 맨날 자네.” 

 

 

 두어 번 등줄기를 쓸다가 마지막으로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 포기한 듯 손을 털고 일어나는 녀석의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멀어져 갔다. 침실로 들어가 자켓을 벗고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챙겨서 욕실로 들어가는 왕여의 콧노래 소리가 흥겨워 보였다.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마저 경쾌했다. 이어 들리는 물줄기. 길 건너 편에서 하루 종일 틀어대던 대중가요의 멜로디를 뒤죽박죽 불러댄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건조하게 눈이 떠진다. 왕여가 봤다면 깜짝 놀라 껑충 뛸 만큼 차분하지만 냉랭한 눈동자로 변모해 반짝 켰다.  

 


  
 맨날 자는 건 맞는데, 

 …애기는 아니야. 
  

 




 

 

 시계를 보자면 그랬다. 저녁 7시 28분. 갈아타는 지하철이 배신을 안 한다면 27분과 29분 사이에 집으로 들어왔다. 회식이 있다거나 야근을 한다 치더라도 21시 안에는 꼭 들어왔다. 배터리의 닳은 이라던가 챙겨봐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그 이유였더랬는데 왕여는 지금 시각 31분, 그니까 2분간 현관 앞 신발장에서 오도카니 서 있었다. 눈가는 어찌나 비벼댔는지 빨개져서는 깜빡깜빡 눈꺼풀을 닫았다 열었다를 1초에 몇 십 번씩 반복했다.  

 

 

 “들어오라고 2번만 더 말하면 100번 될 거 같은데.” 

 

 

 한번 더 손을 들어 지금 처한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비벼대려는 손목을 잡는다. 아침에 피부 쓰리다고 찡찡거리지 말고 그만하지? 왕여가 그렇게 좋아해 마지않았던 통통했던 앞발이 그리 곱지는 않지만 다섯 손가락의 얄쌍한 인간의 손으로 탈바꿈 되어 되려 참 인간의 손을 휘어잡고 있으니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뒤로 더 갈 곳 도 없는데 몸을 떨며 경기를 일으킨다. 하루의 끝이 퇴근이라고 생각하는 왕여의 일과가 뒤죽박죽 엉켜버리면서 맞닥뜨린 현재가 꿈이라고 믿고 싶은 눈치였다. 

 

 

 "네가 주워온 짐승 맞아. 귀신도, 도둑도, 그 뭐야 싸이코 패.. 뭐시기도 아니니까 들어오기나 해. 어?” 

 

 

 잡은 손목을 놓아주고 주방에서 냉수 한 컵 따라서 나오는 김에 왕여가 어제 사온 비스킷을 와그작 소릴 내어 씹어먹으며 말했더니 이번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찬다. 진짜, 14일 동안 지켜봐왔지만 이 인간 감정 기복은 상상초월이다. 먹던 비스킷을 아무렇게나 버리고 슬리퍼를 직직 끌며 왕여의 코앞에 대뜸 얼굴을 들이댔다. 빛이 사라지면서 그늘짐에 왕여의 동공이 커졌다. 

 

 

 "어서 오시라고요 주인님,  
  내가 바로 멍뭉이.” 

 

 

 말해놓고서 아차 싶었는데 정직하게 왕여의 입이 턱이 빠질 만큼 한 자나 벌어진다. 아, 그래 이런 직격 스트레이트 넌 좀 그렇겠다. 아래 위로 훑는 안구 운동에 이어서 가늘게 떨리는 눈가가 가여워 혀를 내어 핥았다. 짐승 때도 못 보던 혀놀림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씨익 웃어 보이니까 검은 눈동자가 천장을 향하면서 한 바퀴 구른다. 기절할까 싶어 뒷목을 받치니까 또 뒤로 물러나고 난리. 

 

 

 “괜찮아?” 
 “ㅈ, 저기요..” 
 “저기 아니고 멍뭉이래도.” 
 “…누구세요, 진짜?” 
 “마지막 주인 이름이 김신이었으니까, 김신이 낫겠다. 김신이야. 김신.” 

 

 

 누구냐 그래서 답지 않게 친절을 비추며 통성명했더니 왕여는 여전히 다물 생각이 없는 입을 벌린 채 또르르 눈물 한방울 흘리곤 그대로 기절.  
 …예상대로라면 좋아서 방방 뛰거나 신기해하거나, 기뻐하면서 부둥켜안아줄 줄 알았는데. 너무 큰 기대였던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상황이라 스스로도 힘이 쭈욱 빠져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발장의 찬 타일에 계속 방치할 수는 없어서 없는 기운 짜내어 축 늘어진 몸을 일으켜주려니까 엉덩이 쪽이 근질근질했다. 힘을 쓰려고 해서 그런지 꼬리가 토옹 튀어나와 살랑거렸다. 수습하려고 하니까 동시다발적으로 왕여의 자켓에서 툭 하고 무언가가 떨어진다. 살펴보니 짐승일 때 자는 모습을 사진으로 인화한 모양이었다. 정갈한 글씨로 잠만보 멍뭉이 11일째 까만 하트가 안 어울리게 써져 있었다. 왕여는 진짜 날 짐승으로 알고 애정을 다 퍼 줄 심산이었나보다-까지 생각이 미치자마자, 처음부터 인간으로 나타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일었다. 과연 거두어 줄는지가 의문이었지만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왕여는.. 
 아침에 일어나면 괜찮아져야 할 텐데 잘 모르겠다. 내일이 토요일이어서 망정이지. 일단 푹 자게 냅두기로 했다. 된장찌개가 소담스럽게 끓어가고 있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 메워댔지만 유쾌하지 않은 소동으로 인해 첫 저녁 식사는 그렇게 무산되어버렸다.  
 에이씨, 난 배고픈데. 

 

 



 

 

 자고 있을 때도 짜증 나는 게 모든 미세 신경 반응들이 코와 귀에 집중되어 있어서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눈은 감고 있어도 조그마한 소리에 쫑긋거리는 본능은 어쩔 수가 없는 거라서 신경을 안 쓸래도 안 쓸 수가 없다. 워낙 예민해서. 왕여가 동이 트는 시각까지 도합 14번을 뒤척이는 동안 내 귀는 그 배로 쫑긋거리고 펄럭여야 했다. 눈까지 뜨기에는 그래 봤자 낯선 이의 낯선 품으로 인해 뒤척임으로 치부해버려서 가만가만 등을 토닥이며 달랬더니만 웬걸? 햇빛 냄새가 난다고 느낄 무렵 별안간 별이 번쩍하길래 눈을 크게 떴더니 바닥으로 추락해서 등을 호되게 부딪쳤다. 

 

 

 “…이거 지금 아침 인사야?” 
 “ㅇ, 왜.. 왜.. 아직도 여기에..?” 
 “있지, 그럼. 어딜 가, 내가.” 
 “정부에서 나왔어요..?” 
 “그게 뭔데.” 
 “민간인 사찰 그런 거.” 

 

 

 하나도 못 알아 먹겠어서 침대 끄트머리로 올라가려다 말고 귀를 후벼대니까 이불을 끌어다 코께까지 덮는다. 그런 거 하나도 몰라. 중얼거리며 이불을 확 걷어 젖히니까 주먹을 동그랗게 말아 쥐곤 공격 자세를 잡는다. 이제는 덤비는 걸로 태도를 바꿨나 보다 싶어서 우스웠다. 

 

 


 “배고프니까 체력 소모 말고 밥이나 먹자.” 
 “누가 보냈어? 어?” 
 “그니까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고요, 주인님.” 

 

 

 거의 잡아당기다시피 식탁으로 오는 동안 또 힘을 쓰는 탓에 꼬리가 토옹 튀어나오니까 왕여가 학을 떼며 소릴 질러댔다. 놀라는 그 본새가 어찌나 일당백인지 눈알이고 콧구멍이고 입까지 있는 대로 다 팽창시켜서 내가 다 놀랄 판이었다. 전혀 진정되지 않은 위인을 억지로 앉히고 찌개가 끓는 동안 팔짱을 말아낀 다음 맞은편에 앉았다. 등 뒤로 수습되지 않은 꼬리가 살랑거리니까 왕여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곤란해하는 듯했다. 그 와중에 정수리에 안테나가 바짝 선 뻗친 머리가 귀여웠다.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어제 말했다시피 난 김신이야.” 
 “…….” 
 “일단.” 
 “…….” 
 “주워줘서 고마워.” 

 

 

 나름 진지하게 말은 하고 있는데 고마움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얼굴이 붉어지길래 고개를 푹 숙였더니 안 그래도 좌우로 움직거리던 꼬리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속도가 붙은 채로 포물선을 크게 그리며 살랑거리는 바람에 왕여가 픽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빼꼼히 눈을 뜨고 쳐다보니 분명 눈 마주쳤는데 고의적으로 피하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음에 덩달아 입술 호선이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아직 정신 상태 회복 안 됐겠지만.” 
 “…….” 
 “주운 책임은 져줘야겠어.” 
 “엉?” 
 “이대로 버리면 나.” 
 “…….” 
 “동물원 갈 지도.” 
 “그건 왜?” 
 “보다시피.” 

 

 

 의도는 국그릇을 잡으려고 일어섰을 뿐인데 아까보다 꼬리가 더 커져서는 살짝살짝 바람까지 일게 했다. 성장 속도는 자각 못할 만큼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스스로도 당황했다. 그럼에도 애써 태연한 척, 한껏 그랬던 척, 여유로운 행동을 보이고는 황토색과 까만색의 단조로운 패턴의 무늬를 가리키면서 한소끔 끓인 된장찌개가 올려져 있는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매운 고추를 좀 더 썰어 넣을 걸 그랬나. 

 

 


 “호랑이거든.” 

 

 


 나름대로 마지막 음절은 밥을 먹듯이 꼭꼭 씹어서 뱉어 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밑반찬을 집어먹으려고 젓가락을 다 잡던 왕여가 멈칫하며 쳐다본다.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 털어주니까 왕여가 어흥? 하는 소리를 내며 손을 앞으로 내밀어 할퀴는 모션까지 취한다. 물음표는 왜 띄우는데 귀엽게.  
     
  

 

 “설마.” 
 “믿고 안 믿고는 주인 맘이고.” 
 “이거 어디 방송에서 하는 몰래카메라 같은 거?” 
 “그건 또 뭔데.” 

 

 

 정말 몰라서 묻는 말인데 회피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젓가락을 놓고는 손을 들어 이마를 짚는다. 말끔한 이마라던가 눈썹이 잘생겼다 생각한 적 있다. 그래서 계속 시선이 머물러졌다. 혼란스러움도 가동되어 슥슥 두어 번 쓸어대다가 다시금 짚는다. 다섯 손가락이 쭉쭉 뻗어서는 그 자태가 곱다. 괜히 고운 왕여의 손을 보자니 슬그머니 손이 내려진다. 그렇다고 시기 따위 하는 건 아니고 왕여의 옥수는 마음에 꼭 든다. 

 

 

 “사과할 거 하나 있어.” 
 “사과? 나한테?” 
 “왼쪽 검지 손가락 두 번째 마디 그거. 물어서 미안해, 진심이야. 보일 때마다 미안해.” 

 

 

 녀석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가 제 손을 쳐다봤다가 다시 내 얼굴을 쳐다봤다가 제 손을 내려다 보는 걸 반복해댔다. 엄지손가락으로 검지손가락을 훑어내면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댄다. 무언가 생각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리는 듯했다. 나는 내 송곳니를 톡톡 두드려 가리키면서 제어가 안된다는 말도 덧붙여줬다. 그랬더니 호랑이라서? 되묻는다. 그럼 나는 또 고개를 끄덕. 왕여가 푸스스하는 웃음을 흘렸다. 아, 방금 꼬리가 굉장히 크게 살랑거려서 등 뒤로 식은땀이 쭉 흘렀다. 

 

 

 “그거 만져봐도 돼?” 
 “꼬리?” 
 “응.” 
 “만져보면 의심 안 할 거야?” 
 “앗, 잠깐 잠깐만.” 

 

 


 벌떡 일어나서 트레이닝 복을 벗으려고 딱 잡으니까 도리질을 목 떨어져 나갈 정도로 치더니 푸드덕 푸드덕 두어 번 휘저어대며 학을 뗀다. 그런 오버액션까진 필요 없이 만져만 보겠다는데 뭘 그렇게 앞서 나가냐며 왕여는 제 뒤통수를 박박 긁어댔다. 안 그래도 뻗친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서 까치집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 머리도 지금 부스스하려나. 녀석과 같은 머리모양이라면 더 할 나위 없이 귀엽겠다로 결론 내리고는 꼬리의 끄트머리를 잡아 왕여의 손등을 쓸었다. 움찔하는가 싶더니 손을 까딱거려서 살살 쓰다듬는게 무척 조심스러워 보여서 웃음이 나오려 했다. 부드럽다-는 네 음절이 너울져서 흘러나오는데 어쩐지 설레임도 묻어 나오는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덧붙여 언제 제 옷을 입어서 구멍까지 다 뚫어놨냐며 억울한 억양으로 웅얼대는데 일부러 뚫은 게 아니라 꼬리가 그랬다고 하니까 입을 합 다문다. 그러면서 힘을 줘서 당겨보기도 한다. 그렇게 안 생겨서는 의심되게 많네. 

 

 


 “몇 살인데?” 
 “몇 살같아?” 
 “100년은 산거 같아.” 
 “그럼 그렇다 치지 뭐.” 

 

 


 사실은 그 곱절에 곱절, 또는 무수한 곱절을 더해야 하지만 하는 뒷말은 삼켰다.  

 

 


 “멍뭉아.” 
 “응.” 
 “호랭이래매.” 
 “응. 호랭이 아니고 호랑이.” 
 “나한테 주인님이라고 하는 거 그거-”  

 

 


 계란말이를 집으려다 말고 왕여는 젓가락 끝을 쪼옥 빨면서 내 눈을 맞춰온다. 와 입술 좀 봐. 짐승 때 좀 많이 핥을 걸 그랬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된장찌개의 두부를 건져먹다가 20번 숫자를 셈하고 씹으면서 가만 눈을 맞춰준다. 꿀떡꿀떡 식도로 들어가려는 두부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느라 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인님 호칭 써 줄 수 있어?” 
 “…겨우 그거? 물론.” 
 “존댓말도!” 

 

 

 식탁보에 유리를 덧대어서 쇠젓가락이 흥분된 상태로다가 타악하고 던지듯 놓이는 바람에 귓가가 쨍해졌다. 뭐 그런 소소로운 걸 눈을 반짝하고 빛내고 그러냐.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니 지루하지가 않아서 참 마음에 든다. 고개를 두어 번 끄덕여주니까 해사하게 미소 지어 보인다. 가지런한 치열이 반짝도 아니고 빤짝거렸다. 
 왕여의 침실에서 휴대전화가 울리는 듯 진동소리가 웅웅거려 귀가 쫑긋거리고 팔랑 거려댔지만 지금 이 설레임이 동동 떠다니는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알려주지 않았다. 조금만 고개를 빼면 액정화면에 뜬 발신자를 볼 수도 있었지만 그리하지도 않았다. 같이 있는 이 시간, 이 공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그럼 다시 호랭이로 돌아갈 수도 있어?” 
 “기꺼이.” 
 “우와-” 

 

 

 집에 손님 데려올 때 약간 조심해야겠다 그치? 고개를 끄덕거리며 결론 도출에 신이 난 왕여가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크게 떠먹었다. 밥도 잘 먹는다. 마음에 든다. 장맛비가 추잡스럽게 내리던 그날 대청마루에서 떽떼구르르 처참하게 버려졌던 콩나물 김칫국이 떠올라서 잠깐 미간을 찡그려댔다. 

 

 

 “신아.” 
 “응?” 
 “나 앞발 보고 싶어. 젤리 그거 눌러 보고 싶은데-” 

 

 

 밥 먹다 말고 어떻게 하면 집중력이 거기로 튀는 건데 대체. 대답 없이 왕여의 밥그릇에 있는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된장찌개에 적시고 입안에 넣어주니까 볼이 빵빵해져선 응응? 두 번 묻는다.  

 

 

 “거, 주인님.” 
 “응?” 
 “낮잠 한 번 자고. 일단 밥부터 다 먹고. 알겠죠?” 

 

 

 철이 안 든 나이가 그대로 드러나서는 보채는 습관 또한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려던 걸 꾹 참았다. 사회에 나가서는 치여사느라 그저 겹겹이 쌓아놓은 웃음이나 짓고 다녔겠지. 원래는 한없이 순진하고 순수해서 어린애 같을 텐데.  
 밥 먹고 바로 자는 거 안 좋다고 왼쪽 볼에다가 음식물을 욱여넣고 오물 거리며 제 의사를 표현하는데 입술만 보여서 혼났다. 밥 먹고 바로 자는 거는 안 좋은데 주인님, 너님이 14번이나 뒤척이는 바람에 잠 다운 잠을 한숨도 못 자서 안구가 뻑뻑하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라고 쏘아붙여주려다 참았다. 사실 지금 한창 성장기라 잠은 틈틈이 자주어야 한다. 몸은 더 안 커질 거 아는데 혈관을 통과하는 기류가 도대체 느껴지지 않아서. 박스 떼기 거처에서는 안 그러더니 확실히 이 모습으로 있으니까 사람 살이 자꾸만 당긴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 놓은 습관도 습관인데 잘 때 아니면 안 그러더니 이상하리 만치 살 내음이 맡고 싶다.  
 싱크대 배수구에 다 쓴 그릇들을 설거지하려고 정리하는 왕여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 거리니까 잔뜩 움츠러들어서는 간지럽다고 멀찍이 떨어지는 게 서운할 정도면 그간 갈증이 심했긴 심했구나, 하는 거다.         

 

 

 “아 맞다, 신아.” 
 “30분 뒤에 물 마시는 게 좋대요.” 
 “아니 그거 말고.” 
 “그럼?” 

 

 

 정수기에서 물통에다가 물을 뜨고 있으니까 고무장갑을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탓에 손가락 하나하나를 일일이 잡아빼던 왕여가 어깨를 톡톡 치길래 돌아봤더니 띄엄띄엄 말하는 입술이고 몸이고 자꾸만 베베 꼰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칭하는 무슨 오글거리는 말을 하려는 가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줍도록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 

 

 

 종국엔 고무장갑에 공기가 들어가게 빙글빙글 안에서 바깥쪽으로 돌려대더니 꽉 눌러서 손가락들이 하나씩 뽁뽁 뽁뽁 소리를 내는 것이 왕여가 눈을 깜빡일 때 저런 소리가 나려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온전한 고무장갑의 형태를 띠게 되니까 이런 거 처음 보지? 하며 샐쭉하니 웃는데 애교살까지 잔뜩 올라가서 주름지며 웃는 눈매가 참 곱다 느낀다. 
 …마음에 드는 게 또 하나 추가되는 아침. 언제까지 더 마음에 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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